쪽빛 바다와 푸른 작물을 품에 안은 마을 수원리.
설촌이후 마을 사람들이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던 용천수가 만조시에는 전부 바닷물 속에 잠기는 까닭에 ‘조물케’라 하였으며
한자로 풀어서 ‘잠수포’라 불려오다가 고종 19년에 ‘수원리’로 개명되었다.
3km에 달하는 해안선과 일주도로 남북으로는 농경지가 잘 정리된 광활한 옥토를 이룬 넓은 평야를 가진 마을이다.
수원리의 전설
수원리 해안가의 속칭 “남수왓” 동쪽 근처에는 용구못(龍九池)이라는 큰 못이 있었는데 이 못에는 아홉 마리 용의 새끼들이 살았다고 한다.
이들이 승천하기 위해서는 꼭 여의주를 물어야 되는데 여의주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아홉 새끼용들은 매일매일 으르렁거리며 서로 다투게 되었다.
아홉 마리 새끼 용들이 여의주 하나를 놓고 매일을 다투다보니 하늘과 땅이 혼탁하여 어느 때는 비가 계속 내리고 어느 때는 거센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마을 사람들의 삶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견디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청명한 길일을 택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용의 새끼들의 싸움을 멈추게 해달라고 빌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마을사람들의 정성을 알아들은 옥황상제는 용들이 서로가 차지하려고 하는 여의주를 큰 돌로 변하게 하여 아무도 여의주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여의주를 차지할 수 없었던 아홉 마리 새끼 용들은 이무기가 되어 승천하지 못하였으며, 아홉 마리 새끼 용들이 차지하려던 여의주는 돌(九龍石)이 되어 석수굴 앞 바다에 떨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