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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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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핀 노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이산하/한라산中).’ 라는 어느 시인의 글귀처럼, 우리가 제주에서 반드시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역사도 있다. 제주 전역에 걸쳐 벌어진 가슴 아픈 참상, 바로 4·3사건이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에 등장하는 북촌마을 4·3길을 통하면 제주 4·3사건 또는 4·3항쟁이라고도 불리는 제주의 아픔을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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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따라 제주 걷기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에메랄드 빛 바다와 절경의 포구’, ‘녹음이 우거진 숲과 아름다운 꽃밭’, ‘분위기 있는 카페’, ‘환상적인 일출과 일몰’, ‘세계 최대 규모의 용암동굴’, ‘제주의 해녀와 어부’, ‘맛집’. 육지사람들은 제주도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물으면 대부분 제일 먼저 이것들을 머릿속에 나열한다. 물론 오랜 시간 제주가 만들어온 이 이미지들도 제주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제주도의 아름다운 신혼여행지는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핀 노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이산하/한라산中).’ 라는 시인의 글귀처럼, 우리가 제주에서 반드시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역사도 있다. 제주 전역에 걸쳐 벌어진 가슴 아픈 참상, 바로 4·3사건이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에 등장하는 북촌마을 4·3길을 통하면 제주 4·3사건 또는 4·3항쟁이라고도 불리는 제주의 아픔을 마주할 수 있다.

에메랄드 빛 슬픔함덕 북촌마을

함덕 북촌마을은 제주 조천읍 함덕리에 위치한 함덕 해수욕장이 있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해안 마을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함덕의 바다는 그 아래 헤엄치는 물고기까지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북촌마을 길을 따라 걷는 길 역시 마치 신전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길게 줄지어 선 기둥과 하얀 땅, 그리고 그에 너무 잘 어울리는 파란 하늘까지. 사방이 즐거운 곳이다. 그러나, 제주인들에게 이곳은 그저 신비롭고 낭만적인 곳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70년전, 군경에 의해 무려 400여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당한 곳이기 때문이다. 무장대의 기습에 군인 2명이 숨지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2연대가 주민들을 무차별하게 총살했다. 이 400명 안에는 좌, 우 이념과는 관계 없는 젖먹이부터 어린이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그때부터 비롯한 제주의 가장 큰 슬픔은 아직까지 잊혀짐과 침묵 속에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그 가족들조차 무서워 넋두리조차 할 수 없었던, 곡소리조차 숨죽이던 그 시절 그 슬픔은 아직까지도 제주에 상처로 남아있다. 그래서 시민들은 이 상처를 잊지 않으려 제주 곳곳에 4·3사건과 관련된 여러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중 사건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북촌에는 4·3길을 조성하여 후손들에게 이 일에 대하여 전하려는 하고 있다. 문득 보니, 북촌 마을 어귀 돌담 아래에 핀 노란 유채꽃 위로 붉은 동백꽃잎이 떨어져 있다. 이 모양새가 묘하다. 기억 속 어느 날, 지금은 그때 그 동백꽃잎이 치워져 있을까.

제주 4·3길의 시작너븐숭이 4·3 기념관

아직 저녁도 아니고 하물며 여명이 밝아 오기 전 아침도 아닌데, 주변이 희끄무레 하고 음울하다. 낮은 구름에 덮인 하늘은 음울해 보였고 한라산 정상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너븐숭이 4·3기념관은 아직 그리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은 아니다. 조천 길가에 자그마하게 자리잡고 있기에 알고 찾아가지 않는 이상 지나치기 쉽다. 또한 다른 관광지에 비해 보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 역시 그닥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발길 또한 드물다. 즐거움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가는 4·3기념관의 모습은, 지난 세월 많은 이들에게 외면 당해왔던, 제주의 아픔과도 닮아있다.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기념관에 들어가면 4·3사건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날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인적사항이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쓰여있고 그 중앙엔 전기 촛불이 항상 켜져 있다. 그것으로 나마 얼어붙은 그들의 차가운 영혼들을 녹여낼 수 있을까.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순이삼촌’의 작가인 현기영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야외엔 4·3사건 당시 군 최대규모의 학살이 자행되었던 학살터와 ‘순이삼촌’ 문학비가 있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듯한 하늘아래 문학비는 버려진 것처럼 널브러져 있다. 엎어진 비석에 쓰여있는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에 들어와 폐부가 먹먹하다.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최후의 도피처서우봉 일제 진지동굴

너븐숭이 기념관을 나와 제주 4·3길을 따라 걸어보자. 4·3길 코스는 따로 네비게이션이 있지 않아도, 걷다 보면 중간중간 이정표와 희고 붉은 리본이 있어서 여행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리본의 흰색과 붉은색은 각각 ‘순결, 결백, 평화’와 ‘정열, 희생, 진실’을 나타낸다. 이 상징을 통해 4·3 사건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인식을 짐작할 수 있다. 언제쯤 그들의 결백과 진실을 향한 숭고한 희생, 평화 의지가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까.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서우봉 일제 진지동굴은 기존 산책로를 벗어나 산 기슭의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볼 수 있다. 이곳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좁은 동굴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동굴의 내부가 드러난다. 라이트로 여기저기 비춰 쉴만한 곳을 찾아 보지만, 4·3사건을 피해 도망친 제주도민들이 안락함을 느꼈을리는 만무하다. 소설 ‘순이삼촌’에선 좌우의 세력 싸움이 도가 지나쳐 밤엔 무장공비에게, 낮엔 군경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공포로 물든 양민들이 각자 솥이며, 쌀이며,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짊어지고 한라산 자락의 동굴로 숨어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한라산의 차가운 밤공기에 서로의 몸을 난로 삼아 밥을 짓는 것조차 들킬까 두려워 겨우겨우 버텨 나갔다. 나라의 이념 싸움으로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먼 친지들까지 죽거나 행방불명 되어버린 그들은, 어떤 구원자도 기대할 수 없는 어두운 동굴 안에서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어둠보다 두려움을 새삼 느끼며 그렇게 그 시절을 보냈다.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양민 학살의 참상당팟

동복리에 위치한 당팟은 처음 둘러보았던 너븐숭이와 마찬가지로 군에 의한 대학살이 일어났던 곳이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네 그루의 팽나무가 을씨년스럽다. 조용히 살고 있던 평화로운 마을에, 한 가족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이고 싶었던 순박한 이들을 위로함일까. 팽나무 가지가 제를 올리듯 몸을 떨며 춤을 추고 있었다. 아니, 그들이 팽나무를 통해, 그리고 바람을 통해 ‘잊지 말아다오. 잊지 말아다오.’ 하고 말을 건다. 나라조차도 외면한 채 역사책의 한 줄이 되어버렸지만 지나는 나그네에겐 그것들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걸까. 그럼에도 주변을 둘러싼 돌담은 하나의 조각이며, 작품이라 그 마음을 빼앗는다. 위를 덮고 있는 하늘은 맑다 못해 시려서 바람이라도 불면 침묵하는 이의 마음을 더 서럽게 한다.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다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가는 4.3 길>

주소 :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1271-2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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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를 김녕쪽에 잡아서 시내로 갈 때마다 북촌을 지났습니다. 북촌에 대해 알아보니 참 눈물나게 가슴아픈 역사가 있던 곳이었더군요. 그리고 서우봉 산책길을 오르다가 샛길로 진지동굴을 봤습니다. 일제의 잔해와 이 안에서 숨어지냈을 우리 가까운 할머니할아버지 세대 분들이 생각나 울컥해졌습니다. 절대 잊지말아야 할 역사의 비극입니다. #제주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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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기영 작가님의 지상위의 숟가락 하나 를 처음 접했을때.. 어릴때 들었던 제주4.3의 생생함을 머리속에서 남아 상상할수 있어요.. 제 부친이 4.3을 겪으셨고.. 현기영작가님과 동년배였으니.. 그시절을 글로서 공유할수 있어서 좋았죠. 부친께도 책을 선물해드렸는데.. 책에서 눈을 못떼시더군요.. 부친께서 어렸을때 들었던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어 놀라워 하셨어요. 부친께서는 중산간이었고, 현기영작가님은 해변쪽이라 그부분이 다르긴 하지만 4.3의 폭넓은 이해를 할수 있었죠.. 테마여행으로 현기영작가님의 순이삼촌 4.3 길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네요. 올해 꼭! 아버지를 모시고 걸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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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이번 4월 여행때 반드시 들려야할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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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정보는 2017-04-27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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