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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의 숨결을 찾아서<제주 원도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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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는 말했다. 아픔이 없는 기쁨과 기쁨이 없는 아픔은 진실하지 않다고. 그에 따르면 아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제주시 원도심은 가장 진실한 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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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력과 고통이 공존하는 옛 제주의 심장부역사문화의 숨결을 찾아서 <제주 원도심 여행>

어느 작가는 말했다. 아픔이 없는 기쁨과 기쁨이 없는 아픔은 진실하지 않다고. 그에 따르면 아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제주시 원도심은 가장 진실한 곳일 테다. 동문시장과 서문시장 상인들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활력이 있는가 하면, 이면에는 역사 속에서 뼈아픈 고통을 감내해 온 건축물들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제주목 관아에서 오현단까지 제주 역사문화의 숨결이 깃든 원도심의 가볼 만한 곳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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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의 정성으로 폐허에서 부활한제주목 관아

제주목 관아(사적 제380호)는 탐라국 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정치,행정,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관아 건물은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수난을 겪었다. 1434년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 타 없어져 조선시대 내내 증축과 개축을 거쳤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는 크게 훼손돼 관덕정을 제외하고는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폐허가 됐다. 지금의 제주 목 관아는 문헌 고증과 전문가 자문을 토대로 2002년 복원한 모습. 당시 도민들은 헌화(獻瓦) 운동을 벌여 복원에 필요한 기와 5만 장을 전량 기부했다고 하니, 숱한 부침 속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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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깃든 곳관덕정

제주 목 관아 입구에 위치한 관덕정(보물 제322호)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세종 30년 제주 목사인 숙청이 군사훈련을 위해 지은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쓰였으며, 현재도 축제의 광장으로 기능하고 있는데 매년 봄의 시작을 알리는 ‘탐라입춘굿’ 행사가 대표적이다. 이를 보기 위해 일부러 제주를 찾는 여행자가 적지 않을 만큼 제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또,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실제 문화재로 지정된 돌하르방은 40 여기에 지나지 않는데 그 원조 돌하르방을 관덕정 곳곳에서 만날 수 있으니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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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에서 지역 문화의 축제로산지천

관덕정에서 탑동 상가를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산지천(山地川)은 한자어 이름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한라산(山) 북쪽 사면 관음사 근처에서 발원해 제주시 아라동, 이도동, 건입동(地)을 거쳐 바다로 흐르는 천(川)이다.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지천은 동문시장 입구 맞은편을 뜻하는데, 1960년대 산업화로 인해 오염돼 복개했으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2002년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모습이다.중간중간 아치형 다리가 놓여 제법 운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아낙들은 이곳에 모여 빨래를 했다고 하는데 세월의 변화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한편, 산지천 광장은 다양한 지역 문화예술축제의 무대가 되고 있어 이따금 길거리 콘서트가 펼쳐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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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에 대부분 묻혀버린 옛 자취제주성지

제주성지는 제주목의 치소를 둘렀던 성터로 돌담을 쌓아올린 외관 덕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제주성을 언제 쌓았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탐라국 당시 쌓았던 것을 고려 시대에 확장 축조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여러 차례 보수해 왜구 방어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랜 역사를 이어온 제주성지는 그러나 일제강점기 들어 크게 훼손되고 만다. 제주항을 개발하면서 성벽을 허물어 바다를 메우는 골재로 사용한 것. 제주성의 옛 자취는 대부분 바닷속에 묻히고 극히 일부만 남았지만 옛 조상들의 축성법을 알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남수각 부분 150여 미터가 복원된 상태이며 제주성지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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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현인을 기리는 제단오현단

산지천을 따로 올라가 동문시장통을 지나 10분 정도 올라가면 오현단이 나온다. 오현단은 제주의 문화와 사상, 교육과 학문에 공헌한 다섯 사람을 기리는 제단이다. 오현은 제주에 유배 온 충암 김정,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과 안무 어사로 내려온 청음 김상헌, 제주목사로 부임해온 규암 송인수를 말하는데, 김정이 1578년 처음 배향되고 송시열이1695년 마지막으로 배향된 것을 보면 오현의 구성 기간이 100여 년에 걸쳐있음을 알 수 있다. 1871년 흥선대원군이 유학의 전당이었던 서원을 대대적으로 철폐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유생들이 조두석을 쌓아 제사를 지내면서 지금의 오현단이 되었다. 오현과 유생들의 깊은 뜻에 비해 오늘날의 유적은 다소 작고 초라해 보여 보는 이의 마음이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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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정보는 2016-12-22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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