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역사

제주도는 굴곡진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삼국시대에서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와
현대사의 격동기까지 제주 역사를 여행해 보자.

  • 초가집 사진
  • 4.3평화공원 사진
  • 4.3평화기념관 전시물 사진
천년의 역사 탐라
'섬나라'라는 뜻을 지닌 '탐라'는 제주의 옛 이름이다. 제주섬에 탐라가 건국된 과정은 '삼성신화'로 알려진 '탐라개국신화'에 잘 나타나 있다.
고고학적 흔적을 보고 싶다면 '삼양동 선사 유적'을 찾아가보면 된다. 국가사적 416호로 지정된 삼양동 선사 유적은 원삼국시대인 기원전 3세기경
제주에 처음으로 형성된 대규모 마을 유적으로 탐라형성기(B.C.200~A.D.200)시대의 사회모습을 보여준다. 삼국시대의 탐라는 백제, 고구려, 신라와
각각 교역했으며,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직후에는 일본과 중국 당나라와도 외교관계를 맞는 등 독자적인 해상왕국의 역사를 이었다.

'탐라'가 '제주'로 바뀌다
고대 해양국가 탐라가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린 것은 고려 숙종 10년(1105)때였다. 고종(1213~1259) 때에 이르러서는
이름 또한 '바다 건너 큰 고을'이란 뜻을 지닌 '제주'로 바뀌었다. 고려시대 제주의 대표적인 흔적은 삼별초와 관련된 유적들이다.
제주섬은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주력군으로 활약했던 삼별초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것. 고려정부군과 삼별초군이 번갈아가며 해안에 쌓았던
환해장성이 남아 있고, 삼별초군이 주둔했던 항몽유적지가 있다. 삼별초군은 애월에 각종 방어시설뿐만 아니라 궁궐과 관아까지 갖춘 항파두리성을 쌓고
여몽연합군에 맞섰지만 고려 원종 14년(1273)에 함락되었다. 그 후 제주는 고려 말 최영 장군이 목호군을 토벌할 때까지 몽골의 지배 속에 놓여 있었다.
새별오름, 외돌개, 막숙, 범섬 등이 최영장군과 목호군이 격전을 벌였던 고려시대의 유적지들이다.

한숨으로 얼룩진 '유배 1번지'
한라산 둘레길은 한라산의 허리 부분인 해발 600~800m의 둘레를 따라 걷는 일입니다.
제주는 고려시대 때부터 유배지로 이용되었다. 고려를 복속시킨 원은 삼별초 정벌 직후 제주를 그들의 직할지로 삼아 몇 차례에 걸쳐 도적과 죄인은 물론이고
왕족과 관리, 승려까지 유배시켰다. 제주가 본격적인 유배지로 이용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서였다. 조선시대 5백 년 동안 2백여 명이 유배를 왔는데,
왕족과 외척, 문무양반, 학자 등은 물론 도적과 국경을 넘다 잡힌 범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유배인들이 있었다. 조선조 5백 년을 통해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한 숱한 인사들이 제주에 끼친 영향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인사 중 하나가 추사 김정희. 그 유명한 세한도와 추사체가 제주 유배생활 중 완성됐다.
대정읍 안성리에 추사적거지가 잘 복원돼 있다.

3읍 9진 25봉수 38연대
조선시대 제주는 5백여 년 동안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으로 구분되어 삼읍 체제로 통치되었다. 각 읍마다 읍성을 쌓았고 읍성 안에 관아시설과 건물들이 들어섰다.
국가교육기관인 향교도 각 읍마다 하나씩 설립됐다. 그리고 왜구 때문에 철저한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제주 전 해안요소에 둘러쌓아진 환해장성,
오름 정상에 설치한 봉수, 해안에 설치한 연대, 방호소로 설치된 진성 등은 조선시대 방어체계를 잘 보여주는 유적들이다. 방호소는 화북진, 조천진, 별방진,
애월진, 명월진, 차귀진, 모슬진, 서귀진, 수산진 등 9개 진이었고, 모든 진에 성이 쌓여졌다. 봉수는 산악을 연결하고 연대는 해안선을 연결하는 통신연락시설이다.
25봉수와 38연대가 있었다. 방어시설 유적들은 제주 곳곳에 제법 많이 남아있다.

아프지만 직시해야할 상처, 일제강점기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 지배는 제주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1930년대 이후 전시체제로 접어들면서 제주도를 주요 군사기지로 인식한 일제는 섬 전역에 군사시설을 강화시켜갔다.
군사시설 공사에는 많은 제주도민들이 동원돼 고초를 겪었다. 상당수의 제주도민들이 일제의 전시총동원령에 따라 징병 ∙ 징용 ∙ 정신대 등의 명목으로 부역에 동원되거나
전장으로 끌려갔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제주사람들의 항일운동은 대단했다. 3 ∙ 1운동보다 1년 먼저 일으킨 법정사 항일운동, 해녀들이 중심이 된 항일투쟁,
일본으로 건너가서 벌였던 자주운항운동, 무정부주의 대중운동 등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항일운동을 펼쳤다. 제주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군사유적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역의 항일운동을 집대성해놓은 역사재현의 현장인 제주항일 기념관 등을 찾아가보자.

평화를 체험하려면 4·3을 알아야
1948년 제주는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큰 비극으로 꼽히는 4 ∙ 3사건을 겪게 된다. 수만명의 인명이 희생되고 130여 개의 마을이 초토화됐다.
4 ∙ 3은 7년여 동안 제주섬 전 지역을 휩쓴 광풍이었다. 더불어 섬 구석구석 4 ∙ 3유적지가 아닌 곳이 드물다. 이제 제주섬은 관광의 섬, 세계 평화의 섬이 되었다.
'진정한 평화'를 체험하려면 평화를 찾기까지 제주가 겪었던 비극과 수난의 시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고 지나치면 반쪽 관광이 될 수밖에 없다.
제주 4 ∙ 3사건을 되돌아보고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된 4 ∙ 3평화공원을 찾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