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초기에 처음 쌓은 것은 아니고, 탐라국 당시 쌓았던 것을 고려 때 왜구 방어용으로 보수하여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일부인 남수각부분이 150여미터 정도 복원되어 있다. 제주도의 중심지역을 지켰던 이곳이 보존상태가 좋지못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부터 1928년 사이에 건입동 포구 앞바다를 매립할 때 성곽의 돌을 매립골재로 사용하면서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헛놓인 돌 하나 없이 듬직한 성곽 주위에는 귤과 유자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가을철 귤이 익을 무렵 성주위는 가을색으로 절정을 이뤘다고 전해진다.
허물어져 가는 옛 성터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지만, 튼튼한 성을 쌓으며 왜침의 '바람'을 잠재우려 했던 선인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축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초기에 처음 쌓은 것은 아니고, 탐라국 당시 쌓았던 것을 고려 때 왜구 방어용으로 보수하여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일부인 남수각부분이 150여미터 정도 복원되어 있다. 제주도의 중심지역을 지켰던 이곳이 보존상태가 좋지못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부터 1928년 사이에 건입동 포구 앞바다를 매립할 때 성곽의 돌을 매립골재로 사용하면서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헛놓인 돌 하나 없이 듬직한 성곽 주위에는 귤과 유자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가을철 귤이 익을 무렵 성주위는 가을색으로 절정을 이뤘다고 전해진다. 허물어져 가는 옛 성터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지만, 튼튼한 성을 쌓으며 왜침의 '바람'을 잠재우려 했던 선인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