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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투어 마을참견 1 <생태 조경사 김봉찬 삼촌의 효돈 생태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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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조경’이란 개념이 아직 생소하던 1990년대, 야심차게 한국에 생태 정원을 도입하겠다고 결심한 이가 있었으니 효돈 토박이 김봉찬 삼촌이다. 나고 자란 고향 마을의 자연에서 생태와 디자인을 배웠다는 그이가 들려주는 귤 마을 효돈의 짙푸른 속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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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마을제주도 1호 생태 조경사 김봉찬 삼촌의 효돈 생태 투어
‘생태 조경’이란 개념이 아직 생소하던 1990년대, 야심차게 한국에 생태 정원을 도입하겠다고 결심한 이가 있었으니 효돈 토박이 김봉찬 삼촌이다. 나고 자란 고향 마을의 자연에서 생태와 디자인을 배웠다는 그이가 들려주는 귤 마을 효돈의 짙푸른 속살 이야기.

제주 사람들에게 효돈 마을에 대해 물으면 열이면 열, 귤을 이야기할 것이다. 매서운 겨울 북서풍이 한라산에 걸려 비켜 가는 효돈 마을은 연중 따뜻하고 귤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20세기 초 일본에서 온주밀감을 처음 들여왔을 때 가장 먼저 심은 곳도 효돈이었다. 1970년대, 제주도에서 귤 농사가 본격화된 후에는 맛 좋은 귤 덕분에 온 마을이 먹고 살았으니, 효돈이 귤 마을이라는 말은 틀린 데가 없다. 김봉찬 삼촌을 찾은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에 생태조경이란 개념이 들어오기도 전, 홀로 외서를 뒤적이며 생태 조경의 길을 개척한 그는 효돈 토박이다. 효돈천부터 월라봉까지, 어렸을 적 뛰어놀던 마을의 자연으로부터 생태 조경의 이론을 세운 그라면, ‘겨울이 온화하고 귤 맛 좋은 부자 마을 효돈’의 속살에 대해 능히 들려줄 듯했다. 대표적인 생태 조경 전문가이자, 제주도 1호 생태조경사인 김봉찬 삼촌에게 ‘나만 아는 효돈 이야기’를 청했다.



마을의 자연에 관해서는 빠삭하시겠어요. 효돈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요?
일단 제주에서 가장 큰 하천 중 하나인 효돈천이 있다는 것이죠. 태평양에서 불어온 고온 다습한 바람이 한라산 남사면에 부딪쳐 지형성 강수가 발생할 때 비가 흘러드는 계곡이 정상 바로 아래의 ‘산 벌러진 내’인데, 그 가장 큰 본류가 효돈을 지나요. 제주의 특성상 효돈천은 건천(乾川)이죠. 비가 그치면 물이 지표 아래로 스며 흘러요. 그러다 암반층이 약한 곳을 뚫고 솟아나는데, 효돈천 상류에서 솟아난 것이 돈내코, 하류에서 솟아난 것은 쇠소깍입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지요. 긴 시간에 걸쳐 암반을 통과한 물이니 무척 맑고 깨끗해요. 돈내코와 쇠소깍의 오묘한 빛은 이 때문이고요.

암반을 통과한 깨끗한 용천수가 바닷물을 만나 오묘한 물빛을 띠는 쇠소깍
효돈천이 제주의 다른 하천보다 특별한 점이 있나요?
그럼요. 원래 계곡은 생태계의 보고예요. 농사를 짓다 보면 밭 갈고 불 놓고 하는 과정에서 원래 자라던 식생은 사라지는데, 계곡은 농토로 부적합해 자연 식생이 그대로 남아 있죠. 깊은 계곡이 중요한 이유예요. 효돈천은 우리나라에서 난대림 식생이 가장 잘 보존된 곳입니다. 제주에서 가장 따뜻한 지역이라 아열대에 가까운 식생도 만날 수 있죠. 생물종 다양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살아 있는 ‘생명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을을 학습장 삼아서 독학으로 생태 조경에 대해 공부했다고요?
혼자서 집마당에 정원을 꾸미면서 공부했어요. 기술적인 건 외국의 생태 조경 문헌을 찾아 읽으며 습득하면 되는데, 디자인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마을의 자연을 관찰하다가 문득 생각했어요. 왜 효돈천은 아름다울까? 바위가 막 흩어져 있는데, 우리는 어째서 그걸 아름답다고 느낄까? 오랜 고민 끝에 답을 얻었죠. 자연에는 언제나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존재해요. 이게 분출되면 그럴 때는 잠시 균형을 잃기에 불안해질 수 있어요. 이를테면 화산 폭발 직후는 아름답지 않잖아요. 하지만 쓸릴 것이 다 쓸려 가고, 무너질 것이 다 무너진 후, 안정을 찾고 나면 그 질서는 아름다움을 되찾거든요. 기이한 형태로 쌓인 돌들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계곡이 우리에게 미감을 주는 이유죠. 이때 깨친 원칙을 바탕으로 정원을 디자인하고 있어요.

제주 1호 생태 조경사로 활동 중이지요. 생태 조경이란 어떤 건지요?
1991년에 생태 조경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확실히 낯선 개념이었죠. 생태 조경은 산업화 이후 나날이 인공적으로 변해가는 도시에 대한 반성으로 생겨난 조경의 새로운 흐름으로, 각 식물의 자연 생태계를 복원해 조성한 정원이에요. 그저 예쁜 꽃을 구해서 옮겨 심는 것이 아니라, 그 꽃의 본래 서식하던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정원을 이루는 온갖 생물들이 자체로 어울려 살 수 있고, 이러한 생태계가 지속되는 상태를 생태 정원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생태 조경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갖게 되었나요?
제주대학교에서 생태학을 전공했고, 1990년대 초 여미지식물원 조경사로 취업했어요. 당시 식물원에는 인공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 청소는 너무나 귀찮은 일이었죠. 세제를 사용하면 안 되는 곳이라 손으로 일일이 이끼를 제거해야 했어요. 다른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자연 늪지는 고인 물이라도 썩지 않는다는 데 생각이 미쳤어요. 자료를 찾아보니 생태 조경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혼자 공부하면서 식물원 구석에 있는 수조 2개를 가지고 실험했어요. 하나는 그냥 물을 채우고, 다른 하나는 생태 조경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여러 조건을 갖춰 수조를 꾸몄어요. 그리고 1년 뒤 수질 검사를 했더니 각각 4급수, 2급수가 나왔어요. 자연과 비슷한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수조의 물이 썩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고, 저의 진로에 대한 결심을 생태 조경사로 굳혔죠.
생태 조경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이전, 유년 시절을 보낸 마을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효돈 아이들은 겨울에도 효돈천에 들어가 놀았어요. 날씨가 원체 따뜻하고, 바위틈의 고인 물은 별로 차갑지 않거든요. 대학 시절, 학과 사람들과 답사를 왔을 때는 교수님이 효돈 지역의 이런 풍경을 흥미롭게 여기던 기억이 납니다. 어렸을 적에는 월라봉에도 자주 갔어요. 참나리, 원추리, 참꽃나무가 무척 많아서 꺾어오곤 했죠. 지금은 사라졌지만, 옛날에는 반딧불이도 있었어요.


귤 값이 예전 같지 않은데, 마을의 미래는 어떻게 보세요?
효돈의 흙은 화산이 폭발할 때 분진이 쌓여 만들어진 화산회토인데, 여기에는 유기물이 없어요. 밭농사에는 부적합하지만 정원 식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유럽의 대표적인 정원 식물 중 ‘만병초’가 있는데, 효돈에서 무척 잘 자라요. 꽃, 풀, 고사리 등 종을 가리지 않죠. 정원 식물을 대량 생산해서 장차 효돈 마을이 ‘정원의 메카’가 되면 어떨까 하는 그림을 그려보곤 해요. 특히 한라산에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희귀한 정원 식물이 많이 자거든요. 흙 좋고 따뜻한 효돈에서 재배하는 일을 상상해보는 거죠.
김봉찬 삼촌이 생태 조경사가 되는 데 효돈 마을이 적잖이 이바지한 것 같아요. 삼촌이 다른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면 다른 일을 하고 있을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영향은 받았죠. 고등학교 때 공부하기가 싫어서 돈내코 근처에 있는 암자에 도망가 혼자 지냈어요. 심심하니까 주변의 아름다운 식물들로 표본을 만들곤 했죠. 대학에선 생물학과에 들어갔는데, 선행 학습을 하고 온 것이나 마찬가지더라고요. 3년쯤 지나니까 제주도에 모르는 식물이 없더군요. 그 길로 계속 식물을 공부하려다가 결국은 연못 청소 때문에 생태 조경사의 길에 들어섰죠.(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효돈 마을에서 만난 풀고사리 대군락. 잎이 때로 3m에 이를 만큼 큰 희귀한 고사리 종류 중 하나다.


➊ 베케
한때 아버지의 귤밭이었고, 이제는 김봉찬 삼촌의 생태 정원 카페가 되었다. 땅과 시선의 높이가 일치하도록 조성한 반지하 형태의 실내에서 정원을 바라보면 이끼와 낮은 풀로 덮인 축축한 습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계단 아래 그늘에 조성한 고사리 정원, 습지 식물로 구성한 빗물 정원, 귤 창고를 부순 자리에 오름 식생을 옮겨 만든 폐허 정원 등 제주의 야생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다양한 정원을 둘러볼 수 있다.
+ 베케 서귀포시 효돈로 54 / 064-732-3828
➋ 월라봉
감귤박물관이 위치할 뿐 아니라 기슭에는 귤밭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어 귤 마을 효돈의 면모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김봉찬 삼촌은 박물관 옆 산책로를 따라 걸어볼 것을 추천하는데, 특히 좌우의 식생을 유심히 살펴보자. 제주의 공식 도화인 참꽃나무, 잎 길이 1.5m를 거뜬히 넘기는 풀고사리 대군락, 상록고사리의 일종인 발풀고사리, 흑난초 자생지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내려가는 길목의 애기업개돌과 구덕찬돌 등 독특한 모양의 암석도 놓치지 말 것.
+ 감귤박물관 서귀포시 효돈순환로 441
➌ 효돈천
흔치 않은 난대림 식생이 원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살아 있는 ‘생명 문화재’ 효돈천. 솔잎란, 담팔수나무, 산유자나무 등을 찾아보자. 트레킹 명소이기도 하니 바위틈을 직접 걸어보는 것이 좋다. 2km의 짧은 길이임에도 3시간 이상 소요될 만큼 험난한 여정이지만, 그 이상의 성취감이 있다. 평소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지만, 비가 내리면 물길이 거세질 수 있으니 날씨를 잘 살펴 여행을 계획해야 한다.
➍ 쇠소깍
‘쇠’는 효돈마을의 옛 이름인 쇠돈을, ‘소’는 물웅덩이를, ‘깍’은 끝을 의미한다. 한라산 정상부의 ‘산 벌러진 내’에서 시작되어 지표 아래로 흐르던 물이 하효 해변 근처 암반을 뚫고 퐁퐁 솟아 장관을 이뤘다. 소나무를 조림하는 바람에 자연 식생이 완벽히 보존되진 못했지만, 여전히 암벽 사이로 독특한 식생을 발견할 수 있다. 물색이 묘하기로 유명한데, 배타기 체험을 하는 이들도 많이 찾는다. 제주 전통배 ‘테우’를 체험하기에 좋다. 마을 해설사가 동승해 테우를 끌며 쇠소깍과 효돈 마을에 대해 들려준다.

➎ 하효 해변
쇠소깍에서 이어지는 하효 해변은 검은 모래와 몽돌로 이루어져 독특한 멋이 있다. 하지만 요즘 방문한다면 예전 같지 않은 모습에 조금 가슴이 아플지도 모르겠다. 하효항 방파제를 지은 후로, 해류의 방향이 바뀌어 지속적으로 모래가 유실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빠뜨리지 말고 검은 모래 위를 걸어보자. 볕에 달궈진 모래는 뜨끈뜨끈하면서도 보드라워 모래찜질 효과가 있다.
➏ 제주 올레 6코스
하효항에서 보목포구 방향으로 걸어가는 바닷가 길로 가볍게 걸어볼 만하다. 김봉찬 삼촌은 특히 현무암 사이의 식생을 유심히 보라고 일러준다. 해풍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자라난 암대극, 해국, 개쑥부쟁이, 우묵사스레피 등이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 유의사항
- ※ 위 정보는 2019-07-08 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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