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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령이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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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한신로143번길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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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령이골 2019


4․3 발발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의귀리는 평온했다. 몇몇 청년들이 5․10선거를 거부해 산으로 피신했지만 군경이 호위했기 때문인지 큰 충돌 없이 선거를 마쳤다. 다만 이 즈음에 좌익 단체활동을 하던 김OO의 부친이 경찰에 끌려가 총살당했다. 이후 가끔 토벌대가 마을을 수색했지만 마을 중심부에 있는 넉시오름 정상에 소위 ‘빗개’를 세워 경찰과 토벌대 병력의 이동을 알렸기 때문에 이렇다 할 희생도 없었다. 하지만 1948년 11월 이후 불어닥친 광풍은 중산간 마을인 의귀리를 통째로 삼키며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몰고 왔다.

서귀포시 무장대 습격이 있던 1948년 11월 7일, 토벌대의 보복인지 아무런 예고 없이 의귀리에 들이닥친 토벌대는 무조건 방화와 학살로 의귀리 주민들을 내몰았다. 이렇게 초토화 작전을 방불케 하는 토벌대의 마을 방화와 학살은 4․3기간을 통틀어 의귀리가 맨 처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장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일부 해변마을로 연고를 찾아 떠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불타버린 집을 의지해 움막을 짓거나 숲 속의 동굴 혹은 냇가의 궤를 임시 피난처로 삼아 가족 단위로 피신생활을 해야만 했다. 노약자나 불구자들은 타다 남은 집에 있다가 수색 나온 군인들에 발각되어 현장에서 희생당하기 일쑤였다. 이 때부터 대부분의 의귀리 주민들은 토벌대에 쫓겨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산야를 헤매는 시련을 겪었다. 은신 중 토벌대에 발각되면 현장에서 총살당했고, 이 때의 희생엔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다.


이후 1949년 1월 12일(음력 1948년 12월 14일) 토벌대를 습격했다가 사살된 무장대 시신은 몇 개월 동안 학교 뒤편에 버려졌다가 마을 서쪽의 ‘송령이골(속넹잇골)’(의귀리 1974-3번지)로 옮겨졌다. 방치되었던 무장대 무덤은 2004년 5월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하던 도법 스님 일행이 벌초를 하고 안내판을 세우면서 다소간에 정비되었다. 거기에는 “희생된 십수 명의 무장대들은 근처 밭에 버려져 썩어가다가 몇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곳에 묻혔지만 내내 돌보는 사람 하나 없이 덤불 속에 방치돼 왔다. 우리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은 우익과 좌익 모두를 이념대립의 희생자로 규정한다. 학살된 민간인 뿐만 아니라 군인 경찰과 무장대 등 그 모두는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때 희생된 내 형제 내 부모였다. ‘평화의 섬’을 꿈구는 제주도, 바로 이곳에서부터 대립과 갈등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우리 순례단은 생명평화의 통일시대를 간절히 염원하며, 모성의 산인 지리산과 한라산의 이름으로 방치된 묘역을 다듬고 천도재를 올리며 이 푯말을 세운다”고 적혀있다.


<출처: 제주도 4.3사업소, 「의귀리 4.3피해실태 전수조사 보고서(제목확인 필요)」(2003)>


송령이골 2019
송령이골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