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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기 자리에 든든히 서있는 친구같은 <내 마음의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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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가 없는 바다는 상상할 수 없듯, 등대는 늘 좋은 친구처럼 묵묵히 바다 곁을 지켜왔다. 성난 바다가 해안을 삼킬 듯 휘몰아쳐도,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를 덮고 침묵할 때도, 칠흑 같은 어둠과 손잡고 토라져 있을 때도 등대는 늘 같은 자리에 머물며 바다와 친구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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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자기 자리에 든든하게 서있는 친구 같은<내 마음의 등대>
등대가 없는 바다는 상상할 수 없듯, 등대는 늘 좋은 친구처럼 묵묵히 바다 곁을 지켜왔다. 성난 바다가 해안을 삼킬 듯 휘몰아쳐도,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를 덮고 침묵할 때도, 칠흑 같은 어둠과 손잡고 토라져 있을 때도 등대는 늘 같은 자리에 머물며 바다와 친구가 되어준다. 감정이 들쑥날쑥한 바다 곁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서 빛을 발하는 등대는 바다 사람들에게도 넉넉한 품을 내어 주었다. 먼 바다를 여행해 온 여행자들과 하루 종일 바다와 씨름하며 고된 노동에 지친 뱃사람들에게 등대는 이제 마음의 닻을 내리고 쉬어도 좋다는 듯 넉넉함으로 배를 품어 준다. 숱한 외로움과 싸워와서일까. 늘 변함없이 모두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등대는 팔을 더 한 껏 벌려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며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어두운 밤, 바다에 떠있는 배에서 바라보는 등대의 불빛은 노곤함을 위로해주지만, 등대에서 보이는 밤바다 너머 선박들의 불빛을 치열하게 느낄 사람들이 있을까. 까만 바다 위 몽글몽글한 점처럼 찍힌 그 빛은 너무 아름다워 그곳이 치열한 삶의 터전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묻어버린다. 그렇게 아름다운 밤바다의 불빛들을, 이곳 산지등대에서 만날 수 있다. 사라봉공원 중턱에 위치한 산지등대는 제주도 북부 연안을 항해하는 선박의 지표로 불린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10월 무인등대로 설치, 1917년 유인등대로 변경되었고 현재 등탑은 1999년에 새로 설치되었다. 제주 도민들 사이에서는 야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불리는데 탑동과 제주항의 불빛과 해가 지면서 물들이는 하늘이 장관이다. 제주 도심과 어우러진 밤바다의 아름다움을 보고자 한다면, 이곳이 정답이다.

등대는 뱃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이지만 관광객들에게는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친근한 친구가 되었다. 제주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호테우 말등대는 목마 등대, 트로이 목마 등대, 간세 등대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호테우 말등대는 단순한 등대의 모양에서 벗어나 제주의 상징인 말의 모양을 본 따 만든 조형등대로 앞면 4미터, 옆면 8미터, 높이 12미터의 크기로 되어 있으며 마리아나 방파제 끝에 서있다. 해가 질 때 이곳을 배경으로 한 바다의 모습은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촬영을 하기 위해 방문한다.

아이를 품듯 바다를 품에 안은 소박한 마을. 거센 바다로부터 보호하듯 마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귀덕 포구는 오밀조밀한 느낌으로 여행자를 품에 안는다. 바다가 주는 안락한 느낌, 그건 아마도 포구 앞쪽에 자연적인 갯바위로 만들어진 큰 여와 ‘족은 여’로 불리는 작은 여가 자연스럽게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중심에 등대를 업고 있는 거북이의 모습이 든든해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낚시꾼들의 숨죽인 호흡만이 파도 소리와 어우러지는 풍경. 거북이 등대는 포구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선주의 도움을 받아 배를 타야만 건널 수 있다. 바다의 물이 빠지고, 아름다운 뱃사장이 드러나면 어른 가슴 높이까지 차오르는 깊이라 바다를 걸어서 건널 수도 있다고 하는데 안전하지 않아 대부분 배를 이용한다.
귀덕 포구에는 옛날에 등대처럼 쓰였던 도대불과 영등할망신화공원이 잘 정비되어 있다. 도대불은 전기가 없던 시절, 항로를 알려주는 등대 역할을 했던 호롱불로 어업문화를 보여주는 유산이다. 이곳에 있는 도대불은 소실되었으나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영등할망신화공원은 매월 2월 초하루 꽃샘추위와 봄 꽃씨를 가지고 귀덕리의 복덕개로 찾아오는 영등할망을 테마로 조성한 공원으로 해안가를 꼼꼼히 둘러보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해안가를 따라 길게 늘어서있는 풍차를 따라가다 보면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풍차와 등대가 함께 있는 바다에 다다른다. 공기의 흐름을 깨는 풍차의 바람 소리와 파도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으며 걸으면 마치 바다 한 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이 온 몸을 압도한다. 마치 바다 사이로 난 길을 걷는 듯, 10분 정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마리여 등대와 마주하게 된다. 등대는 앞쪽으로는 바다에 줄지어 서있는 풍차를 마주하고 있고 육지 쪽의 풍차와도 마주하고 있어 다른 등대와는 달리 덜 외롭게 느껴진다. 특히 이곳은 풍차와 등대의 조합이 아름다워 맑은 날이면 웨딩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기도 한다. 마리여 등대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해상낚시터로 만들어놓은 붉은 다리가 있고 그곳에 자바리상이 서있다. 마리여 등대까지 갔다가 다리를 건너 자바리상이 있는 쪽으로 한 바퀴 돌 수 있는데 30분 정도 걸린다. 마리여 등대 옆에는 바다에 쌓아놓은 돌담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물고기를 잡는데 사용했던 원담이라고 부른다. 원담은 바닷물이 들어올 때 함께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함께 빠져나가지 못하는 원리를 이용한, 제주인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돌그물이다.

자구내 마을 해안에 위치한 포구. 해안절벽을 이루고 있는 당산봉과 고산항과 마주하고 있는 자구내 포구의 한쪽에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도대불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채 소박하게 서있다. 돌등대라고도 불리는 도대불은 전기가 없던 시절 바닷가를 지켜주던 등대로 처음에는 유리로 된 등집에 석유나 물고기 기름, 송진류 등으로 불을 밝혔다고 한다. 이 도대불은 1941년 고산과 목포 사이를 오가는 화물선의 유도등으로 세워졌는데 나중에는 고깃배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도대불은 돛대처럼 높은 대를 세워 불을 밝혀 돛대불이라고 부르다가 도대불로 변화했다는 설도 있고, 등대의 일본어인 ‘도두다이’가 제주도민 사이에 토착화되어 도대불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현재 제주에는 10개에서 13개 정도의 도두불이 남아있다고 한다. LED로 밝은 빛을 내는 새로운 등대가 들어서는 바람에 지금은 초라해진 모습이지만, 수십 년 전 뱃사람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빛을 내던 때의 도대불은 바닷사람들에게 늘 당당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아내의 모든 것을 늘 품어주고 보호해주는 남편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강진환 등대는 아내 김춘지 등대가 서있는 사계항을 굽어볼 수 있는 대평리 하예포구 언덕 위에 당당한 모습으로 서있다. 제주올레 8코스 길에 위치한 이 등대는 좁은 마을을 길과 오솔길을 지난 외딴 언덕 위에 있어 등대를 찾아가는 길 자체도 너무도 아름답다. 특히 등대가 서있는 언덕 위에서 조망하는 바다는 한폭의 그림처럼 웅장한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김춘지 등대처럼 이 등대도 자수성가한 강진환 씨가 고향 마을의 밤을 밝히고자 하는 뜻을 갖고 만든 등대로 제주도를 사랑한 이 부부의 이야기는 제주의 남쪽 바다에서 빛을 발하며 뱃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계항 포구 방파제 끝에 강렬한 붉은색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등대가 있다. 방파제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등대. 산방산을 뒤로, 형제섬을 바라보며 서있는 이 등대는 실존인물의 이름을 딴 등대로 스무 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재일동포 김춘지씨가 세웠다. 고향인 사계리를 늘 그리워하던 그녀는 바다 생활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에 고향 마을에 밤바다를 지켜주는 등대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었고, 95년 그 꿈을 이뤘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의 동반자인 남편도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등대를 세웠고, 이 부부의 등대는 제주 남쪽 바다를 지키는 부부 등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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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정보는 2022-03-10 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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