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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남은 상처 <제주에 남은 일제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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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딛는 땅의 아픔을 안다는 것. 그것만큼 더 확실한 여행도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제주 속 깊이 간직한 일제의 흔적을 찾는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제주의 깊게 파인 상흔을 더듬으며 아픈 제주에 위로를 건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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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 품은 전쟁의 기억, 제주일제군사시설제주에 남은 상처 <제주에 남은 일제의 흔적>

제주의 오름은 그 한편에 시대의 상흔 또한 새겨놓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가끔씩은 지나간 역사가 남긴 아픔을 들춰 보이기도 한다. 이 비참함을 딛고도 양껏 여유로운 오름의 자태를 눈 속에 담다 보면 마음이 아릿해옴을 느낀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서러운 시대. 제주는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까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특히 일제가 일본 본토를 사수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삼으면서, 자칫하면 섬 전체가 전쟁의 화염에 휩싸일 뻔했던 위기에 내몰린 적도 있었다. 내가 딛는 땅의 아픔을 안다는 것. 그것만큼 더 확실한 여행도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제주 속 깊이 간직한 일제의 흔적을 찾는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제주의 깊게 파인 상흔을 더듬으며 아픈 제주에 위로를 건네보자. 우리 세대가 잊지 않았음을 전할수록, 그 상처는 고운 살결로 다시 뒤덮일 테니까.

초록 들판 뒤덮은 전쟁의 상흔알뜨르 비행장
제주에 남은 상처 <제주에 남은 일제의 흔적>


송악산 근처, 농부들이 열심히 땅을 일구고 있는 밭 곳곳에 기괴한 건축물들이 보인다. 보드라운 흙 속 생명을 안고 피어난 농작물 뒤로 자리한 콘크리트 건축물. 가히 흉물스럽기만 하다. 어쩌다 하늘과 마주한 이 너른 벌판이 이토록 가엾은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일까. 알뜨르는 ‘아래 있는 넓은 뜰’이란 뜻을 가진 지명이다. 이토록 정겨운 이름을 가진 장소가 제주의 아픔을 대변하는 곳으로 정의되어 버린 이유가 바로 일제의 지배에 있다.

농지 겸 목초지로 사용되던 너른 벌판 알뜨르. 그런데 일제가 제주를 지배하면서부터 이 벌판은 삶이 아닌 죽음, 전쟁을 준비하는 땅이 되어 버린다. 일본군들은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모슬포 주민들을 동원해 군용 비행장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6십6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비행장 너른 땅에 세워진 폭 20m, 높이 4m, 길이 10.5m 규모의 격납고 20기가 그 흔적이다. 물론 지금은 19기만 남아있고, 1기는 잔재만 남아 있다. 이 격납고들은 현재 등록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어 있다.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제주의 알뜨르를 전쟁의 전초 기지로 활용한다. 1942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3백만 제곱미터 가까운 규모로 확장해 이 지역을 본격 요새화 한다. 전쟁의 막바지, 점차 패색이 짙어가는 일본이 감행한 ‘가미카제’ 훈련이 이뤄졌다고 전해지기도 하는 만큼 아픈 역사를 품은 장소이다.


자연으로 숨긴 제주의 아픈 비밀셋알오름 일제 진지동굴
제주에 남은 상처 <제주에 남은 일제의 흔적>


이보다 더 장관일 수 있을까. 바다 위 형제섬, 우뚝 솟은 산방산, 그 뒤 근엄한 자태로 제주를 굽어보는 한라산까지 내다 보인다. 이렇듯 셋알오름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그림 같다. 푸르른 빛깔을 자랑하는 이 제주의 사랑스러움이 마음속 평안을 안겨주기만 한다. 그러나 이 오름이 제주의 아픔을 비밀처럼 간직한 장소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림 같은 경관마저 슬픔으로 변한다. 이 슬픔을 제주에 안겨준 그 날의 역사는 ‘진지동굴’을 통해 다시금 살펴볼 수 있다. 셋알오름 진지동굴은 4m x 5m 크기에, 전체 길이가 1,220m에 이르는 대형 동굴이다. 미로형 동굴로, 현재까지 조사된 진지동굴 중에서도 최대의 크기로 알려진다.

이 시설 역시 1943년 일제가 인위적으로 만든 군사시설로, 당시 완공되지 못한 채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 전투사령실, 병사, 탄약고, 연료고, 비행기 수리 공장, 통신실 등 중요 군사 시설을 감추기 위해 구축된 것으로, 인근 알뜨르 비행장과도 연관이 있다. 현재 일부는 함몰된 상태이다. 입구는 6개가 있는데, 트럭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그러나 이 입구는 위치를 감추기 위해 계곡을 파내서 만든 만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이 구조물은 당시 일제가 얼마나 철저히 전쟁 방어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도록 한다. 현재 등록문화재 제3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위치 :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316번지


자연 헤집은 인공의 흔적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진지
제주에 남은 상처 <제주에 남은 일제의 흔적>


송악산 아래로 깎아내지를 듯한 해안절벽. 마치 철썩 이는 저 파도로부터 제주섬을 지키듯 매섭기만 하다. 그런데 이 매서운 절벽을 인위적으로 뚫어낸 흔적은 저 멀리서도 보인다. 바로 일제 당시 구축된 해안 동굴진지이다. 옥빛 바다를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 그러나 해안 동굴진지가 위치한 절벽 안쪽에는 그 햇빛마저 가려 스산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이 동굴은 1945년 무렵 건립됐다. 일제의 패망이 거의 확실시됐을 무렵이다. 당시 일본은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자 본토를 사수하고자 일본 내 6개 지역과 제주를 포함, 7개 지역에서 결호 작전을 펴 나간다. 이중 제주에서 진행된 작전은 ‘결 7호 작전’인데 이 작전에 의해 이 해안 동굴진지도 만들어졌다.


제주에 남은 상처 <제주에 남은 일제의 흔적>
제주에 남은 상처 <제주에 남은 일제의 흔적>


일본은 해상으로 들어올 연합군의 함대를 막기 위해 송악산의 절벽을 뚫었다. 이 동굴 안에 소형 선박을 숨겨놨다가, 폭탄을 싣고 자살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서다. ‘ㅡ자형’, ‘H자형’, ‘ㄷ자형’ 동굴 진지 15개가 남아있으며, 가장 짧은 동굴은 6.15m 정도로 절벽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가장 긴 것은 57.3m나 되며, 입구 또한 두 개로 나 있다. 진지 구축을 위한 굴착 작업에는 인근 제주 주민들이 동원됐다. 당시 주민들은 이유 모를 전쟁을 위해 목숨을 걸어 절벽을 뚫어야만 했다. 당시 일제의 전쟁 방어준비 실태를 보여주는 군사시설로 평가되는 이 곳은 현재 등록문화재 제3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위치 :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195-2번지 지선 공유수면


일상으로 다시 덮은 역사의 아픔모슬봉 일제 군사 시설
제주에 남은 상처 <제주에 남은 일제의 흔적>


자연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봉우리들. 그런데 왜 이러한 아름다운 자연이 역사의 아픔을 보여주는 곳으로 자리하게 되었을까. 마치 솟아오른 봉우리의 모양이 거문고를 세워둔 모양과도 같아 ‘탄금봉’이라고도 불렸던 모슬봉. 이 곳에도 일제의 상흔은 거칠게 새겨져 있다. 바로 ‘모슬봉 일제 군사시설’이다. 이 시설 또한 1945년경 구축된 콘크리트 구조의 군사시설이다. 비행장에 필요한 전력 공급 또는 탄약 보관 등을 위해 세워졌으며, 알뜨르 비행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아마 미군 공습 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설은 Y자형으로 이뤄졌으며, 위로는 공기구멍 15개가 뚫려 있다. 규모는 약 200여㎡ 정도이다. 보존상태는 꽤 양호한 편이며, 최근까지 고구마 저장 창고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진다. 한때 제주를 뒤덮은 전쟁의 흔적을 잔잔한 일상으로 다시 덮은 제주인의 심정이 엿보인다. 현재 등록문화재 제 3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위치 :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3415


제주에 남은 상처 <제주에 남은 일제의 흔적>
제주에 남은 상처 <제주에 남은 일제의 흔적>
아비 아픔 파헤친 아들의 집념제주평화박물관
제주에 남은 상처 <제주에 남은 일제의 흔적>
제주에 남은 상처 <제주에 남은 일제의 흔적>


이렇듯 제주 곳곳에 깊은 상처로 남은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 이 역사를 되짚어보자는 목적으로 세워진 박물관이 가마오름 기슭에 위치해 있다. 바로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이다. 2004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부지 약 1만㎡ 안에 자리한 연면적 980㎡ 규모의 1층 건물이다. 건물 안에는 전시실과 영상실이 갖춰져 있다. 당시 일본군이 사용하던 군수품, 문서 및 사진자료, 생존자 증언 자료, 땅굴 작업을 위한 소장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이 일제의 잔혹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시대의 아픔을 여러 자료들 안에 응집해 전시해 놓고 있다.

또한 당시 강제 징용당한 주민들의 고생과 한이 그대로 드러나는 땅굴진지가 함께 있어, 그 처참함을 다시금 드러낸다. 특히 이 진지는 현재 확인된 땅굴진지 113개 중 최초로 일반인에 공개, 활용되는 동굴이다. 높이 최고 2m, 너비 최고 3m, 길이는 총 1.2km에 이르는 1~3 땅굴 중 복원이 끝난 제 1땅굴 300m 구간을 개방하고 있다.  참고로 이 박물관은 일제시대 동굴진지 구축을 위해 강제동원 되었던 이성찬의 아들 이영근이 세운 것이다. 아버지 대 제주 사람들의 고달픔이 잊혀지지 않도록 박물관 곳곳에 그 흔적을 생생히 담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기인한 듯 여겨진다. 


제주에 남은 상처 <제주에 남은 일제의 흔적>
제주에 남은 상처 <제주에 남은 일제의 흔적>

 

유의사항
※ 위 정보는 2022-03-08 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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